2013년 2월 27일 수요일

Shibuya X Hongdae [Part 2.]


안녕하세요. 
Jinon입니다. 
시부야 X 홍대, 2회입니다.

こんにちは。
ジノンです。
渋谷×ホンデ、第2回目です。



Part 2. 시부야와 홍대의 추억 | 渋谷とホンデの思い出

Jinon (이하, J) : 그렇군요. 평상시에는 브라질 음악과 재즈를 듣고 있는 제가 일본의 게임 음악 같은 것을 듣고서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과는 아마 근본적으로 다를거라고 생각해서요, 저는 잘 모르는 부분이 아닐까하네요. 죄송해요, 갑자기 오타쿠스러운 이야기가 되어버려서요. (웃음) 그런데, Hayashi씨께서 말씀하신대로 역시 90년대 도쿄는 음악의 정보량이 매우 집중되었던 시기가 아닐까하는데, 어땠나요?

Hayashi (이하, H) : 역시 그때까지와는 듣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어버렸기 때문에 음악의 정보량이 늘어났던 것은 정확한 인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때까지는 영미 팝뮤직을 중심으로 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락 잡지를 중심으로 읽고 락밴드가 일본에 오면 라이브를 보러 가고, R&B를 좋아하는 사람은 디스코에 가거나 오래된 재즈 전문 레코드점을 가거나 하는 분위기었어요. 
하지만, 80년대 끝무렵에 월드 뮤직 붐과 레어 그루브 무브먼트가 있었기 때문에, '좋은 음악이라면 어떤 스타일로 들어도 괜찮다'라는 분위기가 된 것이 90년대였어요. 그래서 평범한 여자들이 오래된 보사노바와 유럽의 영화 음악과 미국의 훵키 재즈를 같이 듣거나하는 분위기로 되었습니다.

ジノン(以下J)「そうですね。普段はブラジルやジャズを聞いている僕が日本のゲームミューシック等を聞いて面白いと感じたこととはたぶん根本的に違うことだと思いますので、僕にはわからないところになるかもしれません。すみません、急におたくの話になってしまいまして。(笑) ところで、林さんがおっしゃるとおりやっぱり90年代の東京って音楽の情報量がすごく集中された時期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が、どうだったんでしょうか。」

林(以下H)「そうですね。やっぱり今までと聞き方が全然変わってしまったから音楽の情報量が増えたというのが正確な認識だと思います。それまでは英米のポップミュージックが中心で、ロックが好きな人はロック雑誌を中心に読みロックバンドが来日するとライブを観に行き、R&Bが好きな人はディスコに行ったりそういうマニアのレコード屋に行ったりし、ジャズが好きな人はジャズ雑誌を読んだりジャズ喫茶に行ったり古いジャズ専門のレコード屋に行ったりという感じでした。
でも、80年代の終わりにワールドミュージック・ブームとレア・グルーヴ・ムーブメントがあったので、『良い音楽であればどんなスタイルで聞いても良いんだ』という雰囲気になったのが90年代でした。それで普通の女の子が古いボサノヴァとヨーロッパの映画音楽とアメリカのファンキージャズを一緒に聴いたり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

 
J : 그렇군요. 평범한 여자들이 그런 음악을 일반적으로 듣고 있던 시기였었네요. 당시, 소위 시부야계 사운드 중에는 방금 전에 Hayashi께서 말씀하셨던 스타일의 음악이 샘플링의 원곡으로 되어있는 곡도 많았던 기분이 드는데요. 역시 당시의 무브먼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다시금 느끼고 있어요. 원곡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잠시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Hayashi씨께서는 샘플링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H :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어려운 이야기네요. 저는 실질적인 문제로, 레코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과 백지 상태에서부터 곡을 만들고 연주하는 뮤지션이 친구거나 손님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사회의 공유 재산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사용하거나 사용되어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한편, 그 음악을 만들었던 사람들에게 이익이 가지 않고, 샘플링한 사람들에게만 큰 이익이 가거나하면 복잡한 기분이 들게 됩니다. Rosinha De Valença라는 여성 기타리스트가 있죠. 그녀의 레코드는 그렇게 세계 곳곳에서 재발매가 되었는데, 그녀는 만년에 극빈한 생활에 홀로 외롭게 지내다가 죽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는, 역시 이상하다라고 생각했었어요.

J : 확실히 말씀하신대로 샘플링에 대해서는 어려운 이야기가 되네요. '적어도 샘플링을 계기로 재발매되어서 음악을 만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간다면'이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재발매가 된다고해도 정확하게 지불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 듯 하고요. 음, 역시 이런 상황은 이상하긴 하네요.

J 「なるほど。普通の女の子がああいう音楽を普通に聞いていた時期だったのですね。当時、いわゆる渋谷系サウンドの中では先程林さんがおっしゃったスタイルの音楽が元ネタになっている楽曲も多かったような気がしますが。やっぱり当時のムーブメントがあったからこそ可能なことだったと改めて感じますね。元ネタの話もありますので、少しお伺いしたいですが、サンプリングについての林さんはどうお考えになっていますか。」

H 「このことについてはすごく難しい話ですね。僕は実際問題として、レコード会社で働いている人たちや白紙の状態から曲を作って演奏するミュージシャンが友人であったりお店のお客様であったりします。ですので『文化は社会の共有財産だから自由に使ったり使われるべきなんじゃないか』と思う一方で、その音楽を作った人たちにお金が全く行かないでサンプリングした人たちだけが大儲けしていたりすると複雑な気持ちになります。ホジーニャ・ジ・ヴァレンサという女性ギタリストがいましたよね。彼女のレコードはあんなに世界中で再発されたのに、彼女は最後は極貧で一人ぼっちで死んだというニュースを聞いたときは、やっぱりおかしいなあとは思いました。」

J 「確かにおっしゃるとおりサンプリングについては難しい話になりますね。『少なくともサンプリングがきっかけで再発されて音楽を作った人たちにお金が行けば』と思いましたが、再発されてもちゃんと行かない場合もあるらしいですし。うーん、やっぱりこの状況っておかしいな~とは思います。」




J : 그런데, Hayashi씨는 언제쯤 처음 시부야라는 곳과 만나셨어요? 그 때 거리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H : 저는 시코쿠(四国)라는 일본의 남쪽에 있는 꽤 시골 지역의 출신이에요. 그러한 사람에게 있어서 시부야는 도쿄에 오면 가장 처음으로 가는 장소입니다. 파르코(PARCO)로프트(LOFT)에 가서 쇼핑을 하는 것이 정말 세련되었어요.

J 「ところで、林さんはいつごろ最初に渋谷という街に出会いましたか。その時の街の感覚というのは…?」

H 「僕は四国という日本の南のほうのすごく田舎の出身なんですね。そういう人間にとって渋谷は東京に来たら一番最初に行く場所です。パルコロフトに行って買い物をするというのが本当にお洒落でした。」


J : 처음 시부야에 가시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H : 아마도 대다수의 음악 팬들이 그랬던 것 같은데요, 타워 레코드에 간 것이 계기였어요.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으로서는 체육관만한 넓이의 장소에 레코드가 죽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정말 감동했었어요. 

J 「最初に渋谷に行くようになったきっかけはありますでしょうか。」

H 「たぶんほとんどの音楽好きがそうだったと思うのですが、タワーレコード行くのがきっかけです。田舎から出てきた人間としては体育館くらいの広さのところにレコードがずらりと並んでいるのを見て、本当に感動しました。」


H : 그 때에 자주 가셨던 장소는 어디신지?

J : 시부야에 대한 긴장이 풀어지고 여러 가게들을 알게 되면서, 시스코(Cisco Records)와 프리스코(FRISCO), WAVE 같는 세련된 레코드점과 레코판(RECOfan)과 디스크유니온(disk union) 같은 중고 레코드점에 다니기 시작한 것 같은데요? 저는 친구들에게 이끌려서 클럽에 가기도 했었지만, 어느쪽이라고 한다면 레코드점에 가는 쪽이었어요. 80년대 끝무렵부터 90년대초는 정말 레코드점의 거리라는 느낌이었어요. 

J 「その時によく行った場所はどこですか。」

H 「渋谷に緊張しなくなって、色んなお店がわかってくると、シスコやフリスコ、WAVEといったお洒落なレコード屋、レコファンやディスクユニオンといった中古レコード屋さんなんかに通い始めるといった感じでしょうか。僕は友達にクラブに連れて行ってもらったりはしましたが、どちらかというとレコード屋に通う方でした。80年代の終わりから90年代の始めは本当にレコード屋の街という感じでした。」


H : 레코드점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J : 80년대 끝무렵부터 90년대에 걸쳐서 CD, 레코드점이라고 한다면 타워 레코드와 WAVE였어요. 타워 레코드는 미국 브랜드라서 미국의 빌보드 차트 중심의 음악 소프트만 취급하고 있었어요. 보통은 타워 레코드에 먼저 갑니다. 아마도 세계의 어느 곳이더라도 '팝 음악 = 미국 음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가서 유행하고 있는 미국의 락과 R&B를 사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다른 음악도 듣고 싶어진 사람들은 WAVE에 갔었고요. WAVE는 파르코세종 그룹(Parco Saison Group)이라는 세이부 백화점 계열의 대형 자본으로 운영된 곳이었기 때문에, 재즈와 클래식 같은 전문적인 음악 소프트도 많이 취급하고 있었고, 그 밖에 유럽과 아프리카, 브라질, 아시아, 영화 음악과 같은 세계의 흥미로운 음악을 소개했습니다. 90년대에 시부야계를 지탱했던 것은 WAVE에서 근무하고 있던 스탭이 퇴사해서 다양한 장소에서 활약했던 면도 있어요. 시스코는 당시의 DJ문화를 받쳐주었던 클럽 전문 레코드점이에요. 힙합과 테크노는 물론 레게 전문점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프리스코는 그런 시스코의 CD 매장이고요. 당시에는 상당히 구하기 어려웠던 유럽의 인디 레이블의 CD가 여기에서 구할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Dance Music Record(DMR)는 그 이름대로 DJ를 대상으로 한 댄스 뮤진 전문점이에요. 원래는 코우엔지(高円寺)에 있던 매장인데요, 90년대에 시부야 우다가와쵸(宇田川町)에서 전개하기 시작해서, 먼저 DMR에 가는 분위기였습니다. 디스크 유니온과 레코판은 중고 레코드점이고요. 음악을 좋아하는 돈이 없는 젊은이들은 월급날 전에 돈이 떨어지면, 이 두 곳에서 CD와 레코드를 팔아서, 그 돈으로 다시 레코드를 사서 돌아가거나 했어요. 덧붙여서 저는 WAVE 클래식 매장에서 잠시, 레코판에서 2년동안 근무했었습니다. 

J 「もう少し各々のお店について説明していただけますでしょうか。」

H 「80年代終り頃から90年代にかけてCDレコードショップと言えばタワーレコードとWAVEでした。タワーレコードはアメリカの店舗なのでアメリカのビルボードチャート中心の音楽ソフトしか扱っていませんでした。普通はまずタワーレコードに行きます。たぶん世界中どこでも『ポップ・ミュージック=アメリカ音楽』だと思うので、そこに行って流行っているアメリカのロックやR&Bを買うという感じです。でも他の音楽も聞きたくなった人はWAVEに行きました。WAVEはパルコセゾン・グループという西武百貨店系の大手資本のお店ですので、ジャズやクラシックといった専門的な音楽ソフトもたくさん扱っていて、その他にヨーロッパやアフリカ、ブラジル、アジア、映画音楽といった世界中の面白い音楽を紹介しました。90年代の渋谷系音楽を支えたのはWAVEで働いていたスタッフが退社して、色んな場所で活躍したという面もあります。シスコは当時のDJ文化を支えたクラブ・ユース専門のレコード店です。ヒップホップやテクノはもちろんレゲエ専門店なんかもありました。フリスコはそのシスコのCD店です。当時はすごく入手が難しかったヨーロッパのインディーズ・レーベルのCDがここで入手できたのを覚えています。ダンスミュージックレコードはその名前の通り、DJを対象にしたダンスミュージック専門店です。元々高円寺にあったお店なのですが、90年代に渋谷宇田川町で展開し始めまずDMRに行くという雰囲気でした。ディスクユニオンとレコファンは中古CDレコード店です。音楽好きなお金のない若者達は給料日前にお金がなくなると、この二つのお店にCDやレコードを持ち込んで買い取ってもらって、そのお金でまたレコードを買って帰ったりしました。 ちなみに僕はWAVEクラシック売り場で少し、レコファンで2年働いていました。」


J : 예전과 지금의 시부야, 가장 변한것은 어떤걸까요? 

H : 역시 레코드점이 없어졌다는거에요. 시스코가 없어질 때에는 TV 뉴스로도 나왔고요, DMR이 음악 소프트를 취급하지 않게 된 뉴스는 정말 허전해졌습니다. 

J 「昔と現在の渋谷、一番変わったのは何でしょうか。」

H 「やっぱりレコード屋がなくなったということですね。シスコがなくなるときはテレビのニュースになりましたし、ダンス・ミュージック・レコードが音楽ソフトを扱わなくなるというニュースは本当に寂しかったです。」


J : Hayashi씨께서 보셨던 홍대는 어떤 분위기였나요? 역시 카페가 많은걸까요?

H : 정말 카페가 많다라고는 생각했어요. 혹시 지금 세계에서 가장 카페가 많은 거리가 아닐까요? 일본의 카페 붐 시절에는 홍대와 비교해보면 3분의 1정도의 점포수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덧붙여서 '카페가 많구나~'라고 생각한 것과, 그리고 '젊은이들이 굉장히 많아서 어느 가게라도 사람들로 꽉 차있구나~, 활기가 있네~'라고도 생각했어요.

J 「林さんがご覧になったホンデはどんな感じだったのですか。やっぱりカフェが多いことでしょうか。」

H 「本当にカフェが多いなあと思いました。もしかして今、世界で一番カフェが多い街ではないでしょうか。日本のカフェブームのときはホンデと比べて3分の1くらいの店舗数だったように記憶しております。ちなみに『カフェが多いなあ』と思ったのと、あと『若者がすごく多くてどのお店もすごく入ってるなあ。元気があるなあ』と思いました。」


J : 역시 지금 한국은 카페 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음번에는 도쿄와 서울의 카페 붐, 카페 뮤직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은데요, 먼저 Hayashi씨께서 생각하고 계신 당시 도쿄가 카페 붐이었던 시절의 카페 뮤직을 한 곡 소개해 주시겠어요? 

H : 잘 전달이 될련지는 모르겠지만, 카페 뮤직은 일본인 아티스트의 음악이 아니고, 무국적이고 어느 시대인지 모르며, 편안하고 귀여운 이미지라는 것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도쿄에서 아주 유행하고 있지는 않다'라는 느낌도 있고요. 저는 이러한 '펑펑 소비하고, 질리면 이미 오래되었다고 느끼는 분위기'는 어떨까하고 의문을 가지긴 하지만, 그게 도쿄이기때문에 어쩔수 없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느낌이 가장 잘 전해지는 것은 이 곡일까요?
매우 좋은 곡이죠. 
하지만, 전에는 이런게 유행하고 있었고, 지금은 더이상 유행하고 있지 않아요.

J 「やっぱりいま韓国はカフェブームだと思いますので、次回は東京とソウルのカフェブーム、カフェミュージックについてお伺いしたいですが、まずは林さんがお考えになっている当時東京のカフェブームの時のカフェミュージックを1曲紹介していただけますでしょうか。」

H 「上手く伝わるかどうかわからないのですが、カフェミュージックは日本人アーティストの音楽ではなくて、無国籍でどの時代かわからなくて、リラックスして可愛いイメージというのが僕の中にはあります。そして、正直に言うと『今、東京ですごく流行っていない』という感覚もあります。僕はこういう『どんどん消費して、あきたらもう古いって感じる雰囲気』ってどうだろうと疑問には思うのですが、それが東京だから仕方がないのかもと思います。
 
そんな感じが一番伝わるのはこの曲でしょうか。
すごく良い曲ですよね。
でも、以前はこういうのが流行っていて、今ではもう流行っていないんですよね。」




J : 그렇군요. 카페 붐과 카페 뮤직에 대해서는 다시 다음회에 자세히 여쭤볼께요. 그럼, 홍대 쪽으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H : 홍대를 일본에서는 반드시 '시모기타자와(下北沢)와 키치죠우지(吉祥寺)를 더해서 2로 나눈듯한 동네'로 표현됩니다. 실제로 저도 홍대에 가서 '그렇구나, 그런 느낌이네'라고 생각했었고요. 덧붙여서, 시모기타자와와 키치죠우지는 지방에서 도쿄로 올라와서 바로 놀러가는 동네는 아니에요. 바로 가는 곳은 신주쿠나 시부야, 하라주쿠나 다이칸야마입니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친구가 시모기타자와에 살고 있어, 혹은 아르바이트하고 있어'라는 이유로 시모기타자와에 자주 가게됩니다. 그러한 의미로는 홍대는 어떨까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면 바로 가는듯한 동네일까요?

J : 지금 Hayashi씨께서 말씀하셨던 내용에 대해서는 어딘지 알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음,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평범하게 해외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 1989년의 일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9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배낭여행과 같은 해외 여행을 처음으로 갈 수 있었던 거였는데요. 그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어느 정도 가게를 열 수 있게 되었던 것이, 2000년대에 들어간 후였겠고요. 제 바로 윗 세대인데요, 그 세대가 지금의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일본에서 다양한 분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중에 인상에 남았던 것은 '지금 도쿄의 문화란 것은 90년대에 그 완성형과 같은 것이 만들어져서,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것'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한국 상황으로 바꿔놓으면 방금 전에 이야기했던 세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때문에, 현재의 홍대도 아마 다양한 경험을 기반으로 한 해외 문화의 영향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방금전에 Hayashi씨께서 말씀하셨던 내용을 듣고 '아, 그렇구나'라고 느꼈던 점은, 제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도쿄에 갔던 때가 99년의 일인데요, 그 당시에 한국에서 발간되어 있는 도쿄 가이드북은 거의 시부야, 신주쿠, 하라주쿠, 긴자였고, 다이칸야마도 에비스도 주목되어지지 않았던 분위기였어요. 그런것이 현재 홍대의 무브먼트와 같은 것이 나오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이 되면 도쿄를 소개하는 책에서 시모기타자와나 키치죠우지가 메인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러한 동향과는 뭔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어요.

음, 제가 처음 홍대에 갔었던 90년대말에는 '서울에 익숙해지면 가는' 느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면 바로 가는듯한 동네가 되었지 않았을까요? 이미 홍대 메인 스트리트는 어떤 의미로는 시부야와 신주쿠의 느낌이라고 생각해서요. 예를들면, 명동 거리와 비교해봐도 그다지 특징적인 것이란 게 없는 느낌이잖아요. 약간 복잡한 기분이 들지만, 그런 분위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J 「なるほど。カフェブーム、カフェミュージックについてはまた次回に詳しくお伺いしますね。それでは、ホンデのほうに移りたいと思います。」

H 「ホンデのことを日本では必ず『下北沢と吉祥寺を足して、2で割ったような街』と表現されます。実際に僕もホンデに行って『なるほど、そんな感じだなあ』と思いました。ちなみに下北沢と吉祥寺は地方から東京に出てきたらすぐに遊びに行く街ではありません。すぐに行くのは新宿とか渋谷、原宿とか代官山です。そして慣れてきたら『友達が下北沢で住んでる、あるいはバイトしている』という理由で下北沢によく行くようになります。そういう意味ではホンデはどうでしょうか?地方からソウルに出てきたらすぐ行くような街なのでしょうか?」

J 「そうですね。いま林さんがおっしゃったことについては何となくわかるような気がします。うーん、信じ難い話になるかもしれませんが、韓国では普通に海外旅行に行けるようになったのが、1989年の時でした。ですので、90年代に大学生だった人たちが韓国では貧乏旅行のような海外旅行に初めて行けるようになったわけですね。その人たちが学校を卒業し、就職し、ある程度お店をやれるようになったのが、2000年代に入ってからでしょう。僕の一つ上の世代ですが、その世代がいまの文化を作ったと思っています。僕が日本で色んな方々から聞いた話のなかで印象に残ったのは、『いまの東京の文化って90年代にその完成形のようなものが作られて、それがいままで続いていること』でしたが、その話を韓国の状況で置き換えてみると先程言った世代になると思いますね。

ですので、いまのホンデのこともたぶん色んな経験をもとにした海外文化の影響が残っていると思います。ただ、先ほど林さんがおっしゃったことを聞いて『なるほど』と感じたのは、僕が大学に入って初めて東京に行ったのが99年のことですが、その当時に韓国で発刊されている東京のガイドブックってほぼ渋谷、新宿、原宿、銀座ということで、代官山も恵比寿も注目されていない感じでした。それがいまのホンデのムーブメントのようなものが出てくる2000年代の中期になると東京を紹介する本のなかで下北沢とか吉祥寺がメインで登場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たぶんこの動きとは何か繋がっているの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した。

うーん、僕が初めてホンデに行った90年代末のときは『ソウルに慣れてきたら行く』という感じがあったかもしれませんが、いまだとすぐ行くような街にな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もうホンデのメインストリートってある意味で渋谷と新宿の感じだと思いますので。例えば、明洞の街と比べてみてもあまり特徴的なものってない感じではないでしょうか。少し複雑な気持ちになりますが、そんな感じだとは思っています。」


H : 홍대는 클럽과 라이브 하우스와 카페가 많이 있어서, 서울의 인디 문화가 태어난 곳이라고 자주 일본에서는 소개되어지고 있어요. 한편으로 강남 스타일의 유행때문인지, 강남의 존재도 궁금해집니다. 그 두 곳의 관계란게 어떤 느낌일까요? 덧붙여서, 도쿄에서는 중앙선 문화라는 것이 있어서, 중앙선이 다니는 지역에 가는 사람들은 아오야마와 아자부, 롭퐁기에서는 보통 잘 놀러가거나하지 않아요. 

J : 먼저 한 가지 재미있다고 느꼈전 점이 있는데요, 오늘도 일때문에 강남에 다녀왔는데, 거리를 거닐다보면 '강남 스타일'이 뭔가 강남의 캐치 프레이즈 같은 것으로 된듯한 기분이 들어서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했었어요. (웃음) 음, 그 두 곳의 관계란게 그다지 없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요. 강남에서 자주 봤었던 고급 승용차가 어느날부터 홍대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라는 느낌은 있었지만요. (웃음) 전부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지만, 강남과 홍대는 생활 영역이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멀기도 하고요. 

덧붙여서 강남이란게 지하철 2호선의 강남역을 가리키는데요, 강남구도 있기 때문에 (도쿄라면 미나토구(港区)와 같은 느낌일까요?), 상당히 범위가 넓어요. 그리고, 제가 대학생이었던 2000년즈음까지는 강남의 랜드마크로서 한국 타워 레코드가 있었어요. 벌써 철수한지도 10년 이상이 넘어버렸지만, 당시에는 대표적인 약속 장소였기 때문에, 저도 약속 시간보다 조금 빨리 도착해서 CD를 보거나 했었습니다.

H 「ホンデはクラブとライブハウスとカフェがたくさんあって、ソウルのインディーズ文化発祥の街だと、よく日本では紹介されています。一方でカンナムスタイルの流行からか、カンナムの存在も気になります。その二つの街の関係ってどんな感じなのでしょうか。ちなみに東京では中央線文化というのがあって、中央線沿線で遊んでいる人たちは青山や麻布、六本木では普通遊んだりしません。」

J 「先に一つ面白いと感じたのがありますが、今日も用があってカンナムに行ってきましたが、街を歩いてみると『カンナムスタイル』が何かカンナムのキャッチフレーズみたいになったような気がしまして、『すごいな~』と思いました。(笑) うーん、その二つの街の関係ってあまりないような気がしますね。カンナムでよく見てた高級車がある日からホンデでも見られ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感じはあったのですが。(笑) 全てとは言えないですが、カンナムとホンデは生活エリアが違う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遠いですし。

因みに、カンナムって地下鉄2号線の江南(カンナム)駅を指しますが、江南區(カンナム区)もありますので(東京だと港区のような感覚でしょうか)、結構範囲が広いです。あとは、僕が大学生だった2000年頃まではカンナム(江南駅)のランドマークとして韓国のタワーレコードがありました。もう撤退してから10年以上過ぎてしまいましたが、当時は代表的な待ち合わせ場所だったので、僕も約束時間の少し前に着いて、CDを見たりしました。」


H : 홍대에서는 CD, 레코드점이 한 곳 밖에 찾지 못했어요. 서울의 음악 팬들은 어떻게해서 음악 소프트를 구하고 있나요? 다운로드 중심이라고해도, DJ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있을거 같아서, 그 부분이 궁금하게 느껴졌습니다.

J : 저는 선곡은 하고 있지만, 클럽에서 DJ는 하고 있지 않기때문에, 실제로 서울에서 DJ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레코드를 구입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대신에 제 경우를 말씀드려보면, 신촌의 향뮤직, 홍대의 퍼플 레코드레코드 포럼과 같은 곳에서 자주 구입했어요. 모두 역사가 있는 CD, 레코드점입니다. 최근 아날로그라면 rm.360 과 같은 레코드점이, 부산이라면 Bombino Records 가 있어요. 음, 그리고는 역시 해외의 온라인 샵에서 사거나, 직접가서 현지의 레코드점에 가거나하는게 많지 않을까요?

H 「ホンデではCDレコード店が一軒しかみつけられませんでした。ソウルの音楽好きはどうやって音楽ソフトを入手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ダウンロード中心だとしても、DJをしている人たちはたくさんいると思うのでそこが疑問に感じました。」

J 「そうですね。僕は選曲はしていますが、クラブでDJはしていないですので、実際ソウルのDJをしている人たちがどのようにレコードを買うのかについては、詳しくないです。代わりに僕の場合を話してみると、新村のHyang Music、ホンデのPurple RecordRecord Forumのようなお店でよく買いました。全て老舗CDレコード店です。最近アナログだとrm.360のようなレコード店が、プサンだとBombino Recordsがありますね。うーん、あとはやっぱり海外のオンラインショップで買ったり、直接行って現地のレコード店に行ったりするのが多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H : 시모기타자와에 놀러가는 젊은이들은 소위 프리터로 저렴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고, 언젠가 뮤지션이나 배우나 카페 오너가 되고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홍대의 젊은이들은 어떤가요? 혼자 살면서 생활하나요? 프리터인가요? 

J : 지금은 약간 상황이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는 프리터로 혼자 살면서 생활을 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요. 홍대 주변의 월세도 꽤 비싸고요. 

H 「下北沢で遊んでいる若者たちはいわゆるフリーターで安いアパートに一人暮らしをしていて、いつかミュージシャンとか俳優とかカフェオーナーになりたいなと思っている人たちです。ホンデの若者はどうですか?一人暮らしですか?フリーターですか?」

J 「いまは少し状況が変わったことがあるかもしれませんが、基本的に韓国ではフリーターで一人暮らしをするのは難しいと思います。ホンデ周辺の家賃も結構高いですし。」


H : Jinon씨는 어떠한 계기로 홍대에 가게 되었나요? Jinon씨는 저랑 다르게 서울 출신이라서, 어렸을 적에 다른 동네에 가거나 했었어요?

J : 저는 초등학생 시절에는 박물관과 서점을 좋아해서 그 두 가지가 밀집되어 있는 곳에 자주 갔었습니다. 종각 주변인데요, 그 주변과 인사동을 자주 갔었던 기억이 있어요. 당시 경복궁 안에 국립 중앙 박물관이 있었기 때문에, 주말이 되면 박물관에 가고나서 인사동, 종각으로 가는 분위기였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특히 당시 '종로서적'이라는 서점은 건물 구조가 마음에 들어서 자주 놀러 갔었습니다. 1907년에 설립된 서점이었는데요, 제가 어렸을 적에 봤던 건물 구조는 긴자에 있는 '쿄우분칸(教文館)'과 많이 비슷했었어요. 그래서, 도쿄에 살고 있었을 때는 '종로서적'은 이미 없어졌기 때문에, '쿄우분칸'에 자주 갔던 추억이 있습니다. 

한편, 홍대에 갔던 것은 1997년즈음인 고등학생 시절로, 당시 한국에서는 PC통신이 유행하고 있어서, 거기의 재즈 동호회에 가입했었는데,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정모 같은 것이 있어서, 매달 주제를 정해서 다양한 음악을 선곡해, 모두가 모여서 듣는 분위기였어요. 당시에 PC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크게 4곳이 있었는데, 저는 그 중에서 2곳의 재즈 동호회에 가입하고 있었습니다. '세계 곳곳에 있는 다양한 컨템포러리 재즈'와 '와타나베 사다오나 카시오페아와 같은 일본의 재즈, 퓨전'을 듣는 2곳의 동호회였는데요. 그래서, 그 정모가 홍대에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나가기위해 홍대로 갔던 것이 계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는 이런 곡을 들으면 이미 홍대에 있는 기분이 들어버려요. 지금 10대~20대의 젊은 친구들이 들으면 '뭐지 이건?'이라고 생각들련지도 모르겠지만요. (웃음)

H 「ジノンさんはどういうきっかけでホンデに行くことになったのでしょうか? ジノンさんは僕とは違ってソウル出身なので、小さい頃は違う街に行ったりしたのでしょうか?」

J 「僕は小学校の頃は博物館や本屋が好きでその二つが密集されている街によく行きました。鐘路1街の周辺ですが、その周辺と仁寺洞をよく行った記憶があります。当時景福宮の中に国立中央博物館がありましたので、週末になると博物館に行ってから仁寺洞、鐘路1街に行くという感じでした。いまは無くなりましたが、特に当時『鐘路書籍』という本屋は建物の構造が気に入ってよく遊びに行きました。1907年に設立された本屋ですが、僕が小さかった頃の建物の構造は銀座にある『教文館』とすごく似ていたのです。ですので、東京に住んでいた頃には『鐘路書籍』はもう無くなっていたので、『教文館』によく行った思い出があります。

さて、初めてホンデに行ったのは1997年頃の高校の時だったのですが、当時韓国ではパソコン通信が流行っていて、そこのジャズコミュニティーに参加したのですが、月1回はオフ会のようなことがあって、毎月テーマを決めて色んな音楽を選曲してみんなで集めて聞くという感じでした。当時、パソコン通信のサービスをしている会社は大きく4つありますが、僕はその中で2つの会社のサービスのジャズコミュニティーに参加していました。『世界のコンテンポラリー・ジャズ』と『渡辺貞夫やカシオペアのような日本のジャズ、フュージョン』という2つのコミュニティーですが。それで、そのオフ会がホンデにあったので、そこに参加するためにホンデに行ったのがきっかけでした。

ですので、僕の中ではこんな曲を聞くともうホンデの気持ちになってしまいます。いまの10代~20代の若者が聞くと『何これ?!』と思われるかもしれませんが。(笑)」







H : '홍대는 최근에 많이 변했다'라고 다양한 한국분들에게 들었습니다. 이전과 비교해서 최근에는 어떤게 달라졌나요? 홍대가 변했기 때문에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나요? 있다면 어떤 곳인가요? 

J : 제가 느낀것은 '거리의 공기'가 많이 변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잘 전해질련지 모르겠지만, 동네를 구성하고 있는 가게와 사람들이 서울 어디에 가도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다르지 않은 것이 많아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극단적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예를들면 '니시오기쿠보역(西荻窪駅) 주변에 타마미술대학(多摩美術大学)이 있는' 것이 제가 경험했던 시절의 홍대의 이미지였는데요, 그게 갑자기 '주말 밤의 시부야 센터 거리(渋谷センター街)'의 분위기와 같은 느낌으로 되어버렸기 때문에요. 물론, 지금도 개성 강한 사람들이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고 있는 곳이고,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당시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고 있는 곳들도 많이 있지만요. 

H 「『ホンデは最近すごく変わった』と色んな韓国人に聞きました。以前と最近とでは何が違いますか? ホンデが変わったから今は別の街に行ってる人とかいますか?いたらどんな街ですか?」

J 「そうですね。僕が感じたのは『街の空気』がすごく変わったような気がします。上手く伝わらないかもしれませんが、街を構成しているお店や人がソウルのどこに行っても感じられる雰囲気と変わらないのが多くなった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極端な話になるかもしれませんが、例えば『西荻窪駅の周辺に多摩美がある』というのが、僕が経験したときのホンデのイメージだったのですが、それがいきなり『週末の夜の渋谷センター街』の雰囲気のような感覚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ので。もちろん、いまも個性豊かな人たちが色んなことを試してみる街ですし、大変な状況の中でも当時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保っているところも多いです。」


H : Jinon씨의 현재 홍대에 대한 기분의 곡을 가르쳐주세요.

J : 가끔 홍대에 갈 때마다 '만약에 현재의 홍대라는 무대에 나 자신을 세운다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라고 생각해 봤는데요, 역시 방랑자가 어울리지 않을까~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Coração Vagabundo를 골라봤는데요, 이거 Ivan Lins의 EMI 4부작에 있는 버전이에요. 왜 이 버전을 골랐나면요, 곡의 마지막 20초정도가 저에게는 밝고 따뜻한 느낌으로 들려왔기 때문에 골라봤습니다. 지금도 홍대는 밝고 따뜻한 느낌이라고 생각해서요, 결코 우울한 동네가 아니에요~! 라는게 전해질 수 있으면 합니다. (웃음) 

H 「ジノンさんの今のホンデの気分の曲を教えてください。」

J 「偶にホンデに行くたびに『もしいまのホンデという舞台に自分を立てるとどんな役にすれば良いんだろう』と考えてみましたが、やっぱり放浪者が似合うかな~と思いました。ということでCoracao Vagabundoを選んでみましたが、これIvan LinsのEMI4部作にあるバージョンです。なぜこのバージョンかというと曲の最後の20秒くらいが僕には明るくて暖かい感じで聞こえたので、選んでみました。いまもホンデは明るくて暖かい感じだと思いますので、決して憂鬱な街ではないですよ~ということが伝わればと思います。(笑)」





계속 (つづく)


2013년 2월 15일 금요일

GETZ / GILBERTO (by bossa Hayashi)



번역 코너입니다.
다양한 분들의 책, 컬럼, 라이너 노트등에 게재되어져 있는 글 중에서, 상의 후 업로드 할 수 있는 글들을 공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첫 번째 글은 bar bossa Hayashi씨의 GETZ / GILBERTO 라이너 노트입니다.
감사합니다. 
 
翻訳コーナーです。
色んな方々の本、コラム、ライナーノート等で載られている文章のなかで、相談してからアップできる文章を公開する予定です。
一回目は林さんのゲッツ/ジルベルトのCDのライナーノートです。
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 GETZ / GILBERTO (Sep.2003)




9月3日発売の、ゲッツ/ジルベルトのCDの解説を書きました。このサイトを熱心に読んでくれている方にとっては、知っていることばかりかとは思いますが、“初めてボサノヴァを聞く人にわかりやすく”という依頼だったので、こんな内容にしました。このCDは、ジョアン来日記念ということで、ゲッツ/ジルベルト2の方のジョアン・サイドのトラックも追加されています。

9월 3일 발매인 GETZ / GILBERTO의 CD 해설을 맡았습니다. 이 사이트를 열심히 읽어주시는 분에게 있어서는, 알고 있는 내용들만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처음 보사노바를 듣는 사람에게 이해하기 쉽게'라는 의뢰였던 이유로, 이러한 내용으로 했습니다. 이 CD는 조앙(조앙 지우베르뚜, João Gilberto)의 일본 공연 기념이라서, GETZ / GILBERTO 2 에서 조앙이 관련한 부분의 트랙도 추가되어 있습니다.   


ところで、私は常々、女性への簡単なプレゼントはゲッツ/ジルベルトのCDが最適だと、力説しております。普通の女性は、ボサノヴァ・オムニバスCDとか小野リサさんのCDとかは持っていても、意外とこの大名盤は持っていません。一般的に、このCDをプレゼントされて、まず不快に感じる女性はいないし、あなたのことを“趣味が良い人なんだわ”と思うこと確実です。“いや~、ちょっと知っている人がこのCDの解説書いてさ~、5枚も買わされちゃったから、もし良ければ一枚あげるよ”なんて、会社のあの素敵な女子社員にプレゼントされてみてはいかがでしょうか? 次の日に、“あのCDすごく良かったです。○○さんって、ボサノヴァお詳しいんですか? もし良ければ、今日、お食事でもしながら色々教えて下さい。”と言われること、間違いなしです。

평소 저는 여성에게 주는 간단한 선물로는 GETZ / GILBERTO의 CD가 최적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데요. 대개의 여성분들은 보사노바 컴필레이션 CD나 리사 오노씨의 CD등은 가지고 있어도, 의외로 이 유명한 명반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CD를 선물로 받고서, 우선 불쾌하게 느끼는 여성은 없을거고, 당신을 '좋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네'라고 생각할 것이 확실합니다. '이거, 잘 아는 사람이 이 CD 해설을 적어서, 5장이나 사게 되어버렸거든, 괜찮으면 하나 줄께'라고 하며, 직장의 멋진 여자 사원에게 선물해보는건 어떨까요? 다음 날에, '그 CD 너무 좋았어요. OO씨는 보사노바 잘 아시나봐요? 혹시 괜찮으면, 식사라도 같이하면서 이것저것 가르쳐주세요.'라고 듣게 된다는 것, 틀림없습니다.


あ、ちなみに、このCDを聞いていて、驚いたことは、“ソ・ダンソ・サンバ”のゲッツのソロが数秒、長いんですね。不思議に思って、担当の斎藤さんがうちに飲みに来た時に質問したら、96年にオリジナル・レコーディング・テープから、リマスタリングしなおしたので、それ以降の日本盤CDはチャンネルも左右が正しくなり、“ソ・ダンソ・サンバ”のソロも少し長くなったそうです。確認してみてはいかがでしょうか。このCDが売れると担当の斎藤さんも喜びます。

아, 덧붙이자면, 이 CD를 듣고서 놀랐던 점은 'So Danco Samba'에서의 스탄 겟츠(Stan Getz)의 솔로가 몇 초정도 긴데요. 이상하다 생각이 들어서 담당인 사이토씨가 저희 가게에 왔을 때에 질문을 드려보니, 96년에 오리지널 레코딩 테이프를 가지고 다시 리마스터링을 했던거라, 그 이후의 일본반 CD는 채널도 좌우가 정확하게 되어서 'So Danco Samba'의 솔로도 조금 길어졌다고 합니다. 확인해 보시는건 어떨까요? 이 CD가 잘 팔리면 담당인 사이토씨도 좋아하실 거에요. 
 

● イパネマの娘、そしてジョアン・ジルベルト (이파네마의 소녀, 그리고 조앙 지우베르투)




ボサノヴァで一番有名な曲といえば、もちろん“イパネマの娘”。その中でも世界で一番有名なヴァージョンといえば、今、あなたが手にしているCDの一曲目のことです。世界中でのラジオでのオン・エア回数もレコードの売上枚数も、そして恋人達の語らいのBGM率もこのヴァージョンが一番多いはずです。 1962年のブラジル、リオ・デ・ジャネイロ、イパネマ地区のバール“ヴェローゾ”で、詩人であり外交官でもあるヴィニシウス・ジ・モライスと作曲家のアントニオ・カルロス・ジョビンは、ビールやウイスキーを飲みながら、今、街で話題になっている綺麗な女性が通りすぎるのを眺め、この曲を思いつき、歌にしました。20世紀のポピュラー音楽の作曲家を代表するジョビンが作るメロディーが良いのはもちろんですが、ヴィニシウスの詩も恋愛の短編映画を思わせる美しさです。(ちなみにヴィニシウスは、あのガルシア・マルケスも小説の中で引用するほど中南米ではボサノヴァのというよりも、文学の詩人として有名です)この詩の男の子は目の前を通り過ぎる彼女の美しさに、もうまいっちゃってます。男の子はそんな彼女の美しさを様々な言葉で称賛します。男の子は多分、彼女に声なんか掛けられないタイプなんでしょう、彼女の美しさを感じれば感じるほど、自分の孤独さを知ります。

보사노바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라면 역시 '이파네마의 소녀 (The Girl From Ipanema)'.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버전이라면 지금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CD의 첫 번째 곡입니다. 세계에서 라디오로 방송된 횟수도 레코드의 판매 수량도 그리고 연인들의 이야기 속의 BGM 비율로도 이 버전이 가장 많을겁니다. 1962년의 브라질, 히우 지 자네이루(Rio de Janeiro), 이파네마(Ipanema) 지구의 바 '벨로조(Bar Veloso)'에서, 시인이자 외교관이기도 한 비니시우스 지 모라에스 (Vinícius de Moraes)와 작곡가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 (Antônio Carlos Jobim)은 맥주와 위스키를 마시면서, 지금 마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이 곡을 생각해 내서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20세기 팝 음악 작곡가를 대표하는 조빔이 만든 멜로디가 좋은 것은 물론이지만, 비니시우스의 시도 연애물인 단편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내용입니다. (덧붙이면, 비니시우스는 가르시아 마르께스(Gabriel García Márquez)도 소설 속에서 인용할 정도로 중남미에서는 보사노바보다도 문학계의 시인으로 유명합니다) 이 시에서 남자는 눈 앞을 지나쳐가는 여자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길 정도로 반해버립니다. 남자는 그런 그의 아름다움을 다양한 문장으로 칭찬합니다. 남자는 아마도 여자에게 말같은 것은 걸지못하는 타입일거에요, 여자의 아름다움을 느끼면 느낄수록, 자신의 고독을 알게 됩니다.     


そして、この曲を歌うジョアン・ジルベルトも、孤独で挫折だらけの人生でした。1950年にバイーアの田舎ジュアゼイロから希望を胸にリオにやって来た19才のジョアンは、有名なヴォーカル・グループに所属するものの成功はつかめず、プライドも夢も傷つけられ、1955年にリオを去ります。その後、友人の所を渡り歩き、結局はミナスのお姉さんの家にたどり着きます。お姉さんの家で、ジョアンは風呂場に閉じこもり一日中ギターを弾きつづけ、あのボサノヴァ・ギターのリズムを発明しました。1957年、ジョアンはボサノヴァのリズムを携えて、再びリオに向かいます。その頃リオでは湿っぽいサンバ・カンサォンや甘ったるいボレロが流行していて、それらの音楽に辟易していた中流階級の若者達は“僕らにぴったりの音楽はないだろうか”とちょうど試行錯誤していたところでした。そんな場所に、ジョアンが発明したボサノヴァのリズムは登場します。その後、瞬く間にボサノヴァは流行し、ジョアンは時の人となります。そう、もうジョアンは孤独ではありません。“イパネマの娘”を一人ぼっちで歌い始めても、友達のバナナがジョビンが奥様のアストラッドが、そしてゲッツが、彼の歌をそっとサポートします。ジョアンの舞台は、もうアメリカなんです。

그리고, 이 곡을 부르는 조앙 지우베르뚜도 고독과 좌절투성인 인생이었습니다. 1950년에 바이아(Bahia)의 시골 주아제이루(Juazeiro)에서 희망을 가슴에 품고 히우로 찾아간 19세의 조앙은 유명한 보컬 그룹에 소속되지만 성공은 거머쥐지 못하고, 자존심도 꿈도 상처를 받으며 1955년 히우를 떠납니다. 그 후 친구들이 있는 곳을 전전하다 결국은 미나스(Minas Gerais)에 있는 누나의 집에 다다릅니다. 누나 집에서 조앙은 욕실에 틀어박혀서 하루 종일 기타를 계속 치면서, 보사노바 기타의 리듬을 발명했습니다. 1957년, 조앙은 보사노바의 리듬을 가지고 다시 히우로 향합니다. 그 당시 히우에서는 우울한 삼바 칸사웅(Samba Cançāo)과 달콤한 볼레로(Bolero)가 유행하고 있어서, 그런 음악에 질려버린 중류 계급의 젊은이들이 '우리들에게 딱 맞는 음악은 없을까?'라고 때마침 시행 착오를 거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장소에 조앙이 발명한 보사노바의 리듬이 등장합니다. 그 후 순식간에 보사노바는 유행하게 되고, 조앙은 시대의 인물이 됩니다. 네, 더 이상 조앙은 고독하지 않습니다. '이파네마의 소녀'를 혼자서 부르기 시작해도, 친구들인 바나나(Milton Banana)가, 조빔이, 아내인 애스트루드(Astrud Gilberto)가, 그리고 스탄 겟츠가 그의 노래를 살며시 서포트해줍니다. 조앙의 무대는 이제 미국입니다.   
 
 
● このアルバムのいくつかの秘密 (이 앨범의 몇 가지 비밀)


1962年11月、ルイス・ボンファやセルジオ・メンデス達も参加したカーネギー・ホールでのボサノヴァ・コンサートの大成功の後、ジョアンはヴァーヴにアルバムを一枚録音する契約にサインをします。そして翌年の1963年、3月18,19日の二日間に録音は行われました。レコーディングの二日目に、アストラッドが突然、ジョアンとゲッツに“イパネマの娘”を英語で歌わせて欲しいと言い張ります。おそらく、アストラッドはこのチャンスをずっと狙っていたのです。プロデューサーのクリード・テイラーも、そう悪くはないアイディアだと彼女が歌うのを認め、彼女の英語の歌が入った5分15秒という長いヴァージョンを録音します。その後、何故かこのアルバムはすぐには発表されず、しばらくの間クリード・テイラーの机の引出しで眠ることになります。

1962년 11월, 루이즈 본파(Luiz Bonfá)와 세르지오 멘데스(Sérgio Mendes)등이 참가한 카네기 홀에서의 보사노바 콘서트의 대성공 후, 조앙은 버브(Verve)에서 앨범을 한 장 녹음하는 계약에 사인을 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3년 3월 18,19일 이틀간에 녹음을 진행했습니다. 레코딩 둘째날에 애스트루드가 갑자기 조앙과 스탄 겟츠에게 '이파네마의 소녀'를 영어로 부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틀림없이 애스트루드는 이 기회를 계속 노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프로듀서인 크리드 테일러(Creed Taylor)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아이디어라서 노래를 부르도록 인정해서, 애스트루드의 영어로 된 노래가 들어간 5분 15초라는 긴 버전을 녹음합니다. 그 후, 어찌된 일인지 이 앨범은 곧바로는 발매가 되지 않고, 얼마동안은 크리드 테일러의 책상 서랍 속에서 잠들어 있게 됩니다. 


さて、1963年の7月から10月までの間、ジョアンはピアニストのジョアン・ドナート達とイタリアへ演奏旅行に出ます。もちろん奥様のアストラッドも同行しますが、まだアルバムは発売されていないため、彼女にステージで歌う機会は与えられません。10月にドナート達はニュー・ヨークへ戻り、アストラッドはリオへ戻ることになりますが、ジョアンはヨーロッパに残ります。ここ数年間、毎日、長時間ギターを弾きつづけたジョアンは、筋肉膨張症という手の病気にかかっていました。ペレの担当医だった鍼療法医に治療を受けるべくパリへと旅立ったジョアンは、そこでミウーシャと出会うことになります。もちろん、ミウーシャは長年のアイドル、ジョアン・ジルベルトに恋してしまうのです。翌年、1964年2月、ミウーシャはジョアンに会うためにニュー・ヨークにやって来ます。二人は一緒に暮らし始めますが、まだアルバムは発売されておらず、お金に困ってしまいます。そこで、ジョアンは驚くべき行動をとっています。なんと、このアルバムの印税権をヴァーヴに売り渡そうと交渉したのです。もちろん、ヴァーヴはこの提案を無視したので、この後、ジョアンには莫大なお金が転がり込むわけですが...

한편, 1963년 7월부터 10월까지의 기간 동안, 조앙은 피아니스트인 조앙 도나뚜(João Donato) 일행과 이탈리아로 연주 여행을 떠납니다. 물론 아내인 애스트루드도 동행하지만, 아직 앨범은 발매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대에서 노래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10월에 도나뚜 일행은 뉴욕으로 돌아가고, 애스트루드는 히우로 돌아가게 되지만, 조앙은 유럽에 남습니다. 그때까지 몇 년간 매일 장시간 기타를 계속 연주해왔던 조앙은 근육팽창증이라는 병이 손에 걸려있었습니다. 펠레(Pelé)의 담당 의사였던 침술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러 파리로 떠난 조앙은 그 곳에서 미우샤(Miúcha)와 만나게 됩니다. 물론 미우샤는 오랜 시절 자신의 우상인 조앙 지우베르뚜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어버립니다. 이듬해인 1964년 2월, 미우샤는 조앙을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찾아갑니다. 두 사람은 함께 살기 시작하지만, 아직 앨범은 발매가 되지 않아서, 생활비에 곤란해지게 되어버립니다. 여기서 조앙은 놀랄만한 행동을 취합니다. 바로 이 앨범의 인세권을 버브에 팔아넘기려고 교섭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버브는 이 제안을 무시했었기 때문에, 그 후 조앙에게는 막대한 돈이 굴러 들어오게 되지만요......   

    
さて、1964年7月、ようやくこのアルバムは発売さ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そこでプロデューサーのクリード・テイラーはちょっとした仕掛けをします。前述の5分15秒間の長いヴァージョンの“イパネマの娘”のジョアンのヴォーカル部分を切り捨て、アストラッドのヴォーカル部分が中心の3分55秒のヴァージョンを作り、シングルとして発表します。そして、そのアストラッドが歌う“イパネマの娘”のシングルは200万枚の大ヒットとなり、アルバムもチャートを上り、多くのグラミー賞を獲る事となります。

한편, 1964년 7월, 가까스로 이 앨범은 발매되게 됩니다. 여기서 프로듀서인 크리드 테일러는 약간의 계획을 세웁니다. 앞서 언급한 5분 15초간의 긴 버전의 '이파네마의 소녀'에서 조앙의 보컬 부분을 잘라버리고, 애스트루드의 보컬 부분이 중심인 3분 55초 버전을 만들어서 싱글로 발표합니다. 그리고, 그 애스트루드가 노래하는 '이파네마의 소녀'의 싱글은 200만장의 대히트가 되고, 앨범도 차트에 올라서 많은 그래미상을 거머쥐게 됩니다.   


翌年1965年の4月、ジョアンとミウーシャはめでたく結婚します。1965年、妊娠中のミウーシャと一時帰国したジョアンは故郷のバイーアで滞在し、そこでカエターノ・ヴェローゾやガル・コスタと出会って、彼らの前で歌っています。この出会いが後に美しいアルバムを生むきっかけになるのですが、それはまた別の話し...

이듬해인 1965년 4월, 조앙과 미우샤는 행복하게 결혼을 합니다. 1965년 임신중인 미우샤와 일시 귀국을 한 조앙은 고향 바이아에 머물고, 그 곳에서 카에타노 벨로조(Caetano Veloso)와 가우 코스타(Gal Costa)와 만나 그들 앞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그 만남이 나중에 아름다운 앨범을 낳는 계기가 되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고요......


翌年、1966年にミウーシャは出産しますが、もちろんその子供は、現在、歌手として活躍中のベベウ・ジルベルトです。

이듬해인 1966년 미우샤는 출산을 하는데, 물론 그 아이는 현재 가수로 활약중인 베베우 지우베르뚜(Bebel Gilberto)입니다.


● 参加ミュージシャンについて (참여 뮤지션에 대해)


もう一人のこのアルバムの主人公スタン・ゲッツは1940年代から活躍するクール・ジャズのテナー・サックス奏者です。この時期、他のジャズ・ミュージシャン同様、彼もボサノヴァに夢中になり、このアルバムの他にもヴァーヴにいくつかの興味深いボサノヴァのアルバムを残しています。 ピアニストのアントニオ・カルロス・ジョビンは、もちろん本職は作曲家ですが、ギターを弾いたり時には魅力的なヴォーカルも聞かせてくれます。ヴァーヴ、CTIにはクラウス・オガーマンとの素敵なインスト・アルバムがあり、現在でも世界中のリゾート地の温度を5度くらい下げるのに活躍しています。 ドラマーのミルトン・バナナは、ブラジル国内ではかなりの有名ミュージシャンで、個人名義やミルトン・バナナ・トリオ名義のアルバムを多数発表しています。どれもが楽しく踊れるダンス・アルバムで、今でも世界中の素敵な女の子達の腰を振らせ続けています。

또 한 명의 이 앨범의 주인공인 스탄 겟츠는 1940년대부터 활약한 쿨 재즈의 테너 색소폰 주자입니다. 이 시기의 다른 재즈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보사노바에 빠지면서, 이 앨범외에도 버브에서 몇 개의 관심 깊은 보사노바 앨범을 남기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은 물론 본업은 작곡가이지만, 기타를 연주하거나 때로는 매력적인 보컬도 들려줍니다. 버브, CTI에서는 클라우스 오거만(Claus Ogerman)과의 멋진 연주 앨범이 있으며, 지금도 세계 곳곳의 리조트지의 온도를 5도 정도 낮추는데에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드러머 미르톤 바나나(Milton Banana)는 브라질 국내에서는 매우 유명한 뮤지션으로, 개인 명의와 미르톤 바나나 트리오 명의의 앨범을 다수 발매하고 있습니다. 어느거나 즐겁게 춤출 수 있는 댄스 앨범으로 지금도 세계속의 멋진 여자들의 허리를 흔들게하고 있습니다.  


ベースのトミー・ウイリアムスという人物ですが、この人はボサノヴァ・マニアの間では、セバスチャン・ネトの変名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ます。多くのこのアルバムのセッション風景の写真を見ても、やっぱりセバスチャン・ネトです。彼はボッサ・トレスという有名なピアノ・トリオ出身で、このアルバムの後は、セルジオ・メンデスのバンドに参加しています。最近はジャッキス・モレレンバウムもメンバーのジョビン・バンドに所属していますが、写真を見る限り相変わらず髭はそってないようです。

베이스 토미 윌리엄스(Tommy Williams)라는 인물은 보사노바 매니아 사이에서는 세바스챤 네토(Sebastian Neto)의 가명이라고 얘기되고 있습니다. 많은 이 앨범의 세션 풍경 사진을 봐도, 역시 세바스챤 네토입니다. 그는 보사 트레스(Bossa Tres)라는 유명한 피아노 트리오 출신으로, 이 앨범 이후에는 세르지오 멘데스 밴드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쟈퀴스 모레렌바움(Jaques Morelenbaum)도 멤버인 조빔 밴드에 참여하고 있는데, 사진을 보는한 변함없이 수염은 깍고 있지 않는 듯 합니다. 


アストラッド・ジルベルトは前述のように、このアルバムでデビューした後、ボサノヴァを代表する歌手となりました。ゲッツとはもちろん、ジョビンやワルター・ワンダレー達とヴァーヴに残したアルバムは、どのアルバムもハズレがなく、今でも、世界中のキュートで、でも声量があまりない女の子がヴォーカリストとなる時のお手本のスタイルとして重宝されています。

애스트루드 지우베르뚜는 앞서 언급했듯이, 이 앨범으로 데뷔한 후, 보사노바를 대표하는 가수로 되었습니다. 스탄 겟츠는 물론, 조빔과 와르터 완더레이(Walter Wanderley)등과 버브에서 남긴 앨범은 어느 앨범도 버릴게 없으며, 지금도 세계의 귀엽지만 성량이 그다지 풍부하지 않은 여자가 보컬리스트가 될 때의 본보기가 되는 스타일로서 소중히 다뤄지고 있습니다.


ジョアン・ジルベルトです。彼は、このアルバムの成功の後、1964年9月にカーネギー・ホールでタンバ・トリオのエルシオ・ミリト達と録音した音源が“ゲッツ/ジルベルト2”として発表されました。このCDでも9曲目以降は、このアルバムからのボーナス・トラックです。彼はとにかく寡作なアーティストで、ライブ・アルバムを入れても僅か15枚ですが、どのアルバムもとにかく名盤、世界の文化遺産です。彼は飛行機が嫌いという噂で、今まで来日コンサートは実現しませんでした。しかし、飛行機にも慣れたのでしょうか、2003年、ボサノヴァの神様ジョアンは日本に上陸を果たします。

조앙 지우베르뚜입니다. 그는 이 앨범 성공 후, 1964년 9월에 카네기 홀에서 탐바 트리오(Tamba Trio)의 에르시오 밀리뚜(Hélcio Milito)등과 녹음한 음원이 'GETZ / GILBERTO 2'로 발매되었습니다. 이 CD에서도 9번째 곡 이후는, 이 앨범에서의 보너스 트랙입니다. 아무튼 작품을 그렇게 많이 만들지는 않은 아티스트로, 라이브 앨범을 넣어도 간신히 15장 정도이지만, 어느 앨범이나 여하튼 명반, 세계의 문화 유산입니다. 비행기를 싫어한다는 소문으로 지금까지 일본 공연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비행기에 익숙해졌을까요? 2003년, '보사노바의 신' 조앙은 일본에 상륙을 하게 됩니다. 


※ 「ボサノヴァの歴史」と「ブラジリアン・ミュージック」を参考にしました
※ '보사노바의 역사'와 '브라질리언 뮤직'을 참고로 했습니다


ボッサ はやし
bossa Hayashi


※ 「bossa records > column」 より抜粋
※ 'bossa records > column'에서 발췌


2013년 2월 7일 목요일

Shibuya X Hongdae [Part 1.]


안녕하세요. 
Jinon입니다. 

이번에 새로운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Hayashi씨와의 블로그 'The boy from Seoul & Tokyo'의 자매 블로그와 같은건데요, 조금 더 음악으로 테마를 좁힌 느낌이에요. 한국과 일본의 뮤지션을 시작으로, 음악 관계자의 인터뷰, 관련 글의 번역, 보사노바에 대한 것들을 이곳에서 적어보려 합니다. 타이틀은 요 1년간 블로그를 하면서 저 자신에 대해 '메신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에, 'MESSENGERS'로 정했습니다. 

こんにちは。
ジノンです。

この度、新しいブログを始めました。林さんとのブログ『The boy from Seoul & Tokyo』の姉妹ブログのようなものですが、もう少し音楽にテーマを絞った感じです。韓国と日本のミュージシャンをはじめ、音楽関係者のインタビュー、関連文章の翻訳、ボサノバのことなどをこちらで書かせて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タイトルはこの1年間、ブログをやりながら自分の中で『メッセンジャー』になりたいという思いがありましたので、『MESSENGERS』にしました。



한국과 일본의 인디 아티스트가 상대방 나라에 정착할 수 있도록 되기에는, 상대방 나라의 시점에서 본 고유의 카테고라이즈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데, 그것이 한국에서는 '시부야계'로, 일본에서는 Hayashi씨의 '한국 보사'로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보통 한국에서 시부야계는 시부야를, 일본에서 '한국 보사'는 홍대를 각기 생각해내기 때문에, '시부야계와 한국 보사', '도쿄의 시부야, 서울의 홍대'라는 테마로 음악과 지역에 관해서 Hayashi씨와의 대담 코너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시부야 X 홍대, 1회 시작하겠습니다.  


韓国と日本のIndies Artistがお互いに相手の国に定着できるようになるには、相手の国の視点からみた固有のカテゴライズが大きな役割をしていて、それが韓国では『渋谷系』で、日本では林さんの『韓国ボッサ』になると思います。あとは、普通に韓国だと渋谷系は渋谷を、日本だと韓国ボッサはホンデを普通に思い出せることもありますので、『渋谷系と韓国ボッサ』、『東京の渋谷、ソウルのホンデ』というテーマで音楽と街のことについて林さんとの対談コーナを連載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

では、渋谷×ホンデ、第1回目です。



Part 1. 시부야계와 한국 보사 | 渋谷系と韓国ボッサ

Hayashi (이하, H) : 그럼, 저부터 서울의 음악 신에 대해서 질문드릴께요. 먼저, 저는 이걸 '한국 보사'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이런 음악은 언제부터 나온건가요? 

Jinon (이하, J) : Hayashi씨께서 말씀하고 계신 '한국 보사'라는게, 보사노바가 아니라 소위 K-POP과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조류'로서의 한국 인디 음악이라고 생각드는데요, 저는 그 '새로운 조류'가 어느 시기에 한번에 등장했던 것이 아니라, 80년대 후반~90년대 전반까지의 한국에서 나온 양질의 팝 사운드를 좋아해서, 그 영향으로 음악을 시작했던 뮤지션들이 서서히 등장하면서 만들어진게 아닐까하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음, 한국 인디 음악이라는 분위기로는 1996년쯤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많이 얘기하지만요. 

林(以下H)「それでは僕からソウルの音楽シーンについて質問しますね。まず、僕は韓国ボッサって呼んでるんですけど、そういう音楽はいつ頃から出てきたんですか?」

ジノン(以下J)「林さんが仰っている韓国ボッサって、ボサノバではなくいわゆるK-POPとは違う形の『新しい波』としての韓国のIndies Musicという感じだと思いますが、僕はその『新しい波』はある時期に一気に登場したのではなくて、80年代後半~90年代前半までの韓国の良質なポップサウンドが好きで、その影響で音楽を始めたミュージシャン達が徐々に登場しながら作られたのではないかと思っています。うーん、韓国のIndies Musicという感じとしては1996年頃から登場し始めたとよく言われますが」

H : 한국은 지금 카페 붐이라고 일본에서 자주 보도되어지고 있어요. '한국 보사'는 카페 붐과 관련이 있는건가요? 덧붙여서, 카페 붐은 언제쯤부터 시작되었나요? 

J : 카페 붐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그다지 없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홍대에 지금과 같은 느낌의 카페가 등장했던것은 10년전쯤인듯 한데요, 이미 그 시점에서는 어느 정도 홍대에 인디 음악이 정착해 있던 분위기여서요. 저도 그랬지만, 라이브를 보러가는 장소로서의 카페라는 감각은 없었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90년대부터 신촌과 홍대에 있었던 클럽에 가서 라이브를 보거나 했습니다. 드럭이나 롤링스톤즈 같은 곳인데요. 물론, 락과 펑크가 아무튼 대단했었던 시기여서, '한국 보사'와 같은 느낌과는 다를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카페 뮤직과 같은 카테고라이즈도 한국에서는 없는 분위기고요. 가게마다 다양한 좋은 취미들이 BGM으로 표현될 수 있는 느낌이라고 생각해요. 다음으로는, 지금과 같은 카페에서 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것도 4-5년전부터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고요. 

H 「韓国は今カフェブームだと日本でよく報道されています。その韓国ボッサはカフェブームとの関係はあるのでしょうか? ちなみにカフェブームはいつ頃からなのでしょうか?」
J 「カフェブームとは直接的な関係はあまりないような気がします。ホンデにいまのような感覚のカフェが登場したのは10年前ごろだと思いますが、もうその時点である程度ホンデにIndies音楽が定着していた感じですので。僕もそうでしたが、ライブを楽しめる場所としてカフェという感覚はなかった時期ですね。ですので、その当時は90年代から新村(シンチョン)やホンデにあったクラブに行ってライブをみたりしました。DRUGとかRolling Stonesのようなところですが。もちろん、ロックやパンクがとにかくすごかった時期ですので、韓国ボッサのような感覚とは違うかもしれませんが。あとは、カフェミューシックのようなカテゴライズも韓国ではない感じですし。お店の様々な良い趣味がBGMとして表現できる感覚だと思います。あとは、いまのようなカフェでライブを楽しめるのも4-5年くらい前からの動きだと思います」


H : 역시 한국 인디 음악이 유행하고 있는 곳은 홍대인가요? 강남 사람들은 안듣고 있나요? 

J : 확실히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상징으로서의 홍대는 있을테고, 다양한 장르의 개성 풍부한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직장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정보의 발신지로서의 역할도 크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강남에 있는 사람들도 들을거라고는 생각해요. 물론, 홍대의 좌판에서는 Carla Bley의 Lawns 같은 곡을 들을 수 있지만, 강남의 좌판에서는 들을 수 없다라는건 있겠지만요. (웃음) 음, 최근 홍대의 메인 스트리트도 같겠네요. 강남이라고해도 사람에 따라 가리키는 장소가 다르지만,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을 도쿄로 예를 들자면, 니시신주쿠(西新宿)나 심바시(新橋)와 같은 분위기가 있어요. 

H 「やっぱり韓国のインディーズが流行っている場所はホンデなのでしょうか?カンナムの人は聞いていないんですか?」

J 「確かにアンダーグラウンド文化の象徴としてのホンデはありますし、色んなジャンルの個性豊かな人々が働いてる職場等が密集しているので、情報の発信地としても役割は多いと思いますが、カンナムの人も聞いていると思います。もちろん、ホンデの屋台ではCarla BleyのLawnsのような曲を聞けますが、カンナムの屋台では聞けないと思いますけど。(笑) うーん、最近はホンデのメインストリートも同じでしょうか。カンナムだとしても人によって指してるところが違いますけど、地下鉄2号線のカンナム駅を東京に例えると西新宿とか新橋のような感じはあります」


H :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YouTube로 검색하면 꼭 카페 벨로주(cafe Veloso)에서의 라이브 영상이 나오는데요, 역시 카페 벨로주가 중심에 있나요? 다른 유명한 라이브하우스와 클럽, 혹은 페스티벌이랄까 이벤트는 있는지요? 

J : 물론 카페 벨로주도 그렇지만, 최근에는 제비다방과 같은 곳도 있고요, 홍대 주변에 있는 라이브하우스와 클럽을 중심으로 라이브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매년 열리는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과 같은 페스티벌에서도 '한국 보사' 스타일의 뮤지션을 만날 수 있습니다. 

H 「僕が好きなアーティストをyoutubeで検索すると必ずカフェ・ヴェローゾでのライブの動画があるのですが、やっぱりカフェ・ヴェローゾが中心なのですか? 他に有名なライブハウスやクラブ、あるいはフェスティバルとかイベントとかはあるんですか?」

J 「もちろん、カフェ・ヴェローゾもそうですが、最近はゼビダバンというところもありますし、ホンデの周辺にあるライブハウスやクラブを中心にライブ活動をしています。あとは、毎年開かれるGrand Mint Festivalのようなフェスでも韓国ボッサ系のミュージシャンに出会うことができます」



H : 아티스트와 소속 레이블에 대한 것도 가르쳐주세요.

J : ANTENNA MUSIC (TOY, Lucid Fall, Peppertones 등)、Magic Strawberry Sound (옥상달빛, YOZOH, LUCITE TOKKI 등), Luova Factory (가을방학 등)과 같은 소속 사무실이 있습니다. 앨범 발매 레이블은 Pastel Music, Happy Robot Record등이 있어요. 

H 「アーティストや所属レーベルのことなんかを教えて下さい」
J「ANTENNA MUSIC (TOY、Lucid Fall、Peppertones等)、Magic Strawberry Sound (屋上月光(OKDAL)、YOZOH、LUCITE TOKKI等)、Luova Factory (秋休み等)のような所属事務所があります、アルバムの発売レーベルではPastel Music、Happy Robot Record等があります」


H : 일본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영어와 일본어를 할 수 있는 한국인 비지니스맨은 루시드폴을 모르는 사람도 자주 있는데요, 듣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지요? 대학생이라던가 그런가요?

J : 물론 홍대 주변은 문화와 예술 관련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이러한 음악에 공감해서 접하고 있는 비율이 높을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평범한 회사원과 직장인 여성들도 있을거라 생각해요. 여성의 비율이 높은 것은 확실하겠지만요, 10대부터 제 바로 윗세대까지도 듣고 있기 때문에, 대학생에 한정되어지지는 않을거 같아요. 아마도 어떤 종류의 공통된 감각이 있어서, 거기에 공감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세대와 직종에 제한없이 듣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H 「日本で働いている英語や日本語が出来るビジネスマン韓国人はルシッド・フォールを知らない人がよくいるのですが、聞いている人はどんな人達ですか?大学生とかですか?」
J 「もちろん、ホンデ周辺は文化や芸術関連の仕事をやっている人も多いですので、その人達はこのような音楽に共感して接している割合が高いとは思いますが、普通のビジネスマンやOLもいると思います。女性の割合が高いのは確かなことですが、10代から僕の一つ上の世代までも聞いていると思いますので、大学生に限られないと思います。たぶんある種の共通の感覚があって、それに共感している人なら世代や職種に限らず、聞いていると思います」



H : 문학, 영화, 만화, 클럽등과의 관련은 있나요? 

J : 일본에 관한 것을 예를 들어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와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같은 느낌일까요? 한국의 FM라디오라면 유희열의 All That Music이나 '라디오천국' 같은 방송에서의 분위기의 영향이 매우 관련성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H 「文学や映画やマンガやクラブとかに関係はありますか?」

J 「日本のことで例えてみますと、村上春樹や安倍夜郎の『深夜食堂』という感じでしょうか。韓国のFMラジオだとYoo Hee-yeolのAll That Musicとか『ラジオ天国』のような番組の感覚の影響ってすごくかかわりがあったと思います」


H : 서울 이외의 지역은 어떤가요?

J : 물론 부산과 대구에서도 서울과 같은 경향은 있지만, 서울과 그 주변의 수도권에 모여있는 느낌은 있습니다. 

H 「ソウル以外の地域ではどうですか?」

J 「もちろん、プサンやテグでもソウルのような動きはありますが、ソウルやその周辺の首都圏に集まっている感じはあります」


H : 이런 음악들을 한국 사람들은 어디에서 정보를 얻고, 어떻게 구입을하나요? 모두가 체크하고 있는 잡지와 웹 사이트가 있나요? 

J : 잡지라면 음악 잡지보다도 PAPER나 Street H와 같은 컬쳐와 지역을 다루고 있는 잡지가 될 듯 합니다. 요 몇 년간은 TV드라마의 사운드트랙에서 참가하고 있는 형태도 많기 때문에, 그 방송이 계기가 되는 것도 있을지모르고요. 그 다음으로는 카페와 가게에 배치되어 있는 자료를 보거나, 친구들 사이에서의 입소문등도 있을 것 같아요. 

H : 그렇군요. 서울 인디 신, 앞으로도 점점 흥미로워질 듯 하네요. 

H 「その音楽を韓国人はどこで情報を知って、どうやって手に入れてるんですか? みんながチェックする雑誌やWebサイトがあるんですか?」

J 「雑誌だと音楽雑誌よりもPAPERとかStreet Hのようにカルチャーや街を扱っている雑誌になると思います。この何年間はテレビドラマのサントラで参加している形も多いですので、その番組がきっかけになることもあるかもしれません。あとは、カフェやお店で配置されている資料をみたり、友達同士の口コミ等だと思います」

H 「なるほど。ソウルのインディーズ・シーン、これからますます面白くなりそうですね」


J : 그럼, 이번에는 제가 시부야계에 대해 질문을 드려볼께요. 시부야계는 어떤 음악인가요? 언제쯤부터 나온거에요? 

H : 1990년대에 초반부에요. '피지카토 화이브'와 '플리퍼즈 기타'라고 하는 영국의 네오 어쿠스틱과 미국의 1960년대 음악에 영향을 받은 밴드를 가리킵니다. 

J 「では、今度は僕が渋谷系について質問しますね。渋谷系はどういう音楽ですか、いつ頃から出てきたんですか」

H 「1990年代の最初の方ですね。ピチカート・ファイブやフリッパーズ・ギターといったイギリスのネオアコースティックやアメリカの1960年代の音楽に影響を受けたバンドのことを指します」




J : 그 당시의 도쿄, 혹은 시부야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H : 1980년대가 끝나갈 무렵, 파르코 문화라는게 있었어요. 시부야의 코우엔도오리(公園通り) 쪽이 세련된 분위기로 되었던게 우선 하나이고요. 그리고 WAVE라는 대형 CD매장이 생겨서 유럽의 음악과 브라질 음악, 예전 영화 음악 같은 것을 간단히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WAVE에서 근무하고 있던 사람들이 다른 매장과 뮤지션, 프로듀서로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그 흐름이 꽃피워지게 된 것이 1990년초였어요. 그 무렵은 시부야의 우다가와쵸(宇田川町)에 있던 HMV가 시부야계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J 「その当時の東京あるいは渋谷の雰囲気は?」

H 「1980年代の終わり頃、パルコ文化というものがあったんですね。渋谷の公園通りの方がお洒落になったのがまず一つ。そしてWAVEという大型CDショップが出来てヨーロッパの音楽やブラジル音楽、昔の映画音楽なんかを簡単に聞くことが出来るようになりました。その後、WAVEで働いていた人たちが違うお店やミュージシャンやプロデューサーとして働き出してその流れが花開いたのが1990年の頭という感じでした。その頃は渋谷の宇田川町にあったHMVが渋谷系をひっぱっていました」


J : 시부야계라는 음악에서 시작되어서, 유행했던 것 같은게 있었나요? 시부야계는 당시 전반적으로 젊은이 중심의 무브먼트일까요? 그렇지않으면, 어느 특정한 계층 사이에서의 것일까요?

H : 시부야계는 음악이 중심이지만, 그 후 카페 붐에는 다소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당시 전반적인 젊은이들의 문화는 아니었습니다. 그 후, 초식계 남자라는 명칭이 나왔지만, 그 명칭에서 상징되어지듯이 스포츠 같은 것은 잘 못하고,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를 좋아하며, 영화와 예술에도 관심이 깊은 문과계 사람들에게 지지되어졌던 문화였어요. 덧붙여서, 당시 보사노바 CD가 일본에서 3000장 발매되면, 그 중 2000장은 시부야에서 팔렸다고 얘기되어지고 있었기때문에, 매우 수도권 중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J 「渋谷系という音楽から始まって、流行ったこととかあったんですか。渋谷系って当時の全般的な若者中心のムーブメントでしょうか。それとも、ある特定の階層の間でのことでしょうか」

H 「渋谷系は音楽が中心ですが、その後のカフェブームには多少影響を与えていますね。当時の全般的な若者の文化ではなかったです。その後、草食系男子という言葉が出てきたのですが、その言葉に象徴されるようにスポーツとかは苦手で村上春樹とかが好きで、映画や芸術にも詳しい文科系の人達に支えられた文化でした。ちなみに当時、ボサノヴァのCDが日本で3000枚発売されたら、そのうちの2000枚は渋谷で売れたと言われていましたのでかなり首都圏中心だったと思います」


J : 시부야계라는 말은 시대에 따라, 장르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어진다고 들었던 적이 있는데요, 정말 그런가요? 예를들면, 지금 시부야계라고 하면 그다지 좋지 않은 느낌의 인상이 된다던가, 그런 류의 이야기인데요.

H :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라는 만화와 영화는 아시고 계시나요? [바로가기] 사실은 시부야계 밴드를 하고싶었던 남자가 헤비메탈 밴드를 하게된다는 이야기인데요, 그 영화에서는 시부야계 음악도 부끄러운 장르로서 그려지고 있어요. 예를들면 지금 '보더 셔츠를 입고 있는 여자는 인기가 없다'라고 인터넷상에서 많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보더 셔츠 = 시부야계'이기 때문에, 약간 오래된 이미지일련지도 모르겠습니다. 

J 「渋谷系という言葉は時代によって、ジャンルによって結構様々な解釈になると聞いたことがありますが、本当にそうですか。例えば、いま渋谷系って言うとあまりよくない感じの印象になるんだとか、そんな感じのことですけど」

H 「『デトロイト・メタルシティ』というマンガと映画はご存知でしょうか?[LINK] 本当は渋谷系のバンドをやりたかった男の子がヘビメタバンドをやることになるという話なのですが、その映画では渋谷系の音楽も恥ずかしいジャンルとして描かれています。例えば今『ボーダーのシャツを着ている女の子はもてない』とネット上でよく話題になっているのですが、『ボーダーのシャツ=渋谷系』なので、ちょっと古いというイメージかもしれません」


J : 당시 유명했던 라이브 하우스, 클럽, 이벤트와 가게등은 있었나요? 

H : 라이브하우스는 특별히 시부야계를 의식한 곳은 없어요. 시부야계 밴드는 라이브하우스에서는 별로 연주하지 않았을련지도 모르겠고요. 쿼트로가 유일하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클럽이라고 해야하는지 어떤지 어려운 내용이지만, 시부야계의 가장 오래된 곳은 '바 아오야마'에요. 30명정도밖에 들어갈 수 없는 작은 바인데요, 보통 고니시 야스하루(小西康陽)와 UFO등이 DJ를 하고 있었어요. 오르간 바(Organ Bar)와 프리 소울(Free Soul)은 역시 시부야계의 중심이죠. 다음으로는 blue나 Room도 있습니다.

J 「当時有名だったライブハウス、クラブ、イベントやお店などはありますか」

H 「ライブハウスは特に渋谷系を意識した箱はないですね。渋谷系のバンドはライブハウスではあまり演奏しなかったからかもしれません。クワトロが唯一そうかもしれません。クラブというべきかどうか難しいのですが、渋谷系の一番の老舗はバー青山ですね。30人くらいしか入れない小さいバーなのですが普通に小西康陽やUFOなんかがDJしていました。オルガン・バーとフリー・ソウルはやっぱり渋谷系の中心ですよね。あとはblueとかroomとかもあります」




J : 문학, 영화, 만화 같은 것과 관련은 있었나요? 

H : 영화는 'CD재발매'와 같은 분위기로 '비디오화 및 재상영'과 같은 움직임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로슈포르의 연인들 (Les Demoiselles de Rochefort)'이에요. 또, 이탈리아와 브라질의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 CD가 많이 나오는 재미있는 현상도 있었습니다. 만화와 문학도 아마 찾아보면 뭔가 있을 듯 하지만요, 지금은 잘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J 「文学や映画やマンガとかに関係はありますか?」

H 「映画は『CD再発』と同じような感じで『ヴィデオ化および再上映』のような動きがたくさんありました。僕が個人的に覚えているのは『ロシュフォールの恋人達』ですね。あとイタリアやブラジルの誰も観たことない映画のサントラのCDがたくさん出るという面白い現象もありました。マンガと文学もたぶん探せば何かありそうですが、今ちょっとおもいつきません」


J : 음악적으로는 레어 그루브나 도쿄에서의 카페 뮤직에 연결 고리가 있었을까요? 

H : 레어 그루브와 시부야계는 물론 관련성이 매우 있었습니다. 시부야계의 아티스트는 DJ감각으로 예전 음악을 '인용'한다는 새로운 감각을 일본 팝 음악에 가지고 들어왔어요. 도쿄의 카페 붐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전반인 느낌인데요, 보사노바와 라운지 음악을 '카페 뮤직'이라는 카테고리로 소개하는 형태가 유행했었습니다. 그 중심은 아프레미디(Cafe Apres-midi)라는 카페의 하시모토 토오루(橋本徹)가 만든 컴필레이션 CD였기 때문에, 시부야계의 연장선상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J 「音楽的にはレアグルーヴとか東京でのカフェミュージックに繋がりはあったんでしょうか」

H 「レアグルーヴと渋谷系はもちろん繋がりはすごくありました。渋谷系のアーティストはDJ感覚で昔の音楽を『引用』するという新しい感覚を日本のポップ・ミュージックに持ち込みました。東京のカフェブームは1990年代の終わりから2000年代の前半という感じなのですが、ボサノヴァやラウンジ音楽を『カフェ・ミュージック』というカテゴリーで紹介するという形が流行りました。その中心はアプレミディというカフェの橋本徹がつくったコンピレーションCDでしたので、渋谷系の延長線上という感じでした」



J : 지금 시부야에서 당시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장소는 있나요? 

H : 실은 그렇게는 있지않지만, 우선 가장 처음으로 생각드는 것은 Bar Music일까요. Bar Music은 이전 아프레미디에서 근무했던 나카무라 토모아키(中村智昭)가 경영하고 있는 곳이라서, 시부야계의 현재의 모습과 같은 스타일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음은 사라바 도쿄(SARAVAH東京)라는 삐에르 바루(Pierre Barouh)의 부인께서 경영하고 있는 라이브 하우스가 있어서, 그 곳에서 때때로 열리는 Bar Buenos Aires라는 이벤트도 현재의 시부야계의 모습일련지 모르겠습니다. 

J 「いま渋谷のなかで当時のイメージを感じられる場所はあるんですか」

H 「実はそんなにはありませんが、まず一番最初に思いつくのはBar Musicでしょうか。Bar Musicは以前アプレミディで働いていた中村智昭が経営しているお店なので渋谷系の現在の形のようなスタイルが楽しめると思います。後はサラヴァ東京というピエール・バルーの奥様が経営しているライブハウスがありまして、そこで時々あるBar Buenos Airesというイベントも現在の渋谷系の形なのかもしれません」


J : 지금 한국의 10~20대 젊은층에게는 아마 이 곡이 시부야계라는 느낌이 많이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방금전 '한국 보사'의) 한국의 FM라디오에서도 많이 방송이 되어서, 어떤 의미로는 시부야계의 상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현상에 대해 의견이나 감상을 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H : Harvard가 한국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저는 new korean music guidance라는 책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한국에 젊은층이 일본의 음악을 들어준다는 것은 솔직히 매우 기뻐요. 하지만, 2013년 도쿄에 살고 있으며, 평상시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 재즈를 듣고 있는 저로서는 한국의 음악은 일본의 시부야계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은 루시드폴, 드린지오, 혹은 장르는 다르지만 소녀시대 쪽이 '재미있다'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좀 복잡해서 Jinon씨께 전해질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요. 

J 「いま韓国の10~20代の若者にはたぶんこの曲が渋谷系という感覚が多い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が、(先程の韓国ボッサの)韓国のFMラジオでもヘビーローテーションになって、ある意味渋谷系の象徴になっています。この現象についてのご意見とかご感想を聞かせていただけますでしょうか」

H 「ハーバードが韓国で受けているという話は僕はnew korean music guidanceという本で初めて知りました。韓国の若い人が日本の音楽を聞いてくれるのは正直、すごく嬉しいです。でも、2013年の東京に住んでいて、普段はブラジルやアルゼンチンやジャズを聞いている僕としては、韓国の音楽は日本の渋谷系の影響を受けていないルシッド・フォールやドリンジ・オー、あるいはジャンルが違いますが少女時代の方が『面白い』と感じます。この話はちょっと複雑なのでジノンさんに伝わるかどうかわかりませんが」




계속 (つづく)